소식지 & 언론보도


No. 37

기자회견-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56년 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

0506_162916286.jpg KakaoTalk_20200506_162916286.jpg   0506_162915989.jpg KakaoTalk_20200506_162915989.jpg  


한국여성의전화 외 384개 여성 ·시민 사회 단체는 오늘 6일 오후 1시 부산지방법원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 >을 진행한 후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본 기자회견은 최나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의 사회로, 피해당사자와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등 참가자 7인의 발언이 진행되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긴 세월 동안 피해 당사자가 겪었을 고통과 상처, 억울함을 생각하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고미경 대표는 56년 전 성폭력은 기소조차 하지 않은 검사와 피해자의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정당방위 주장은 배척했던 판사에 대해 규탄하며,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권리, 부당한 것에 저항할 권리를 빼앗기며 오히려 가해자로 규정된 피해 당사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이 "한국에서 최초의 성폭력 재심 판결을 통해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되었고, 국가의 책무성을 외면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안겼던 사법부는 철저히 사과하고 배상했고, 여성의 방어권이 이 사건을 계기로 인정된" 사건으로 다시 기록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김수정 변호사는 피해자의 진술을 통해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당시 경찰은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피해자를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피해자가 고의로 가해자의 혀를 절단한 것이라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김수정 변호사는 당시 판결이 ‘불법 대 법’(혹은 ‘부정(不正) 대 정(正)’)의 관계이며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 없다’는 명제가 기본 사상을 이루고 있는 정당방위의 이념에 반하고, 정당방위 인정 요소에서 상당성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하여 무죄가 선고되어야 할 것을 유죄가 되게 한 위법한 판결로서 재심 개시 사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성인지 감수성'은 보편적 가치이며 재심대상판결을 심리한 때에도 견지되었어야 할 가치인데도 불구하고, 피해 당사자는 성폭력 피해자로 사법절차의 보호를 받는 것이 마땅함에도 오히려 가해자의 범죄 유발 책임까지 추궁당하며 보호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자에게 재심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법원이 나서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푸는 첫 걸음이라며 재심을 촉구했다.
장유정 부산여성의전화 활동가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상담 현장에서의 참담한 현실을 언급하며,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사법부의 피해자 책임론에 입각한 질문과 판결에 좌절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여성 폭력 피해 경험을 의심하고 가해자의 상황과 남성의 시선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결론지어온 사법부가 피해자에게 인권과 정의를,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처벌로 응답하는 것이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석영미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유독 변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교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늘어나고 진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N번방 성착취 사건과 오거돈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한 분노를 표했다. 아직 여성들은 일상의 폭력과 차별 앞에 해방되지 못했으며, 남성 중심적이고 가해자 중심적인 사법기관과 변하지 않은 검찰의 태도가 피해자의 '정당방위'의 주장을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사법부는 피해자의 용기에 '정의'로 응답할 것을 요구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김지은 안희정성폭력 사건 피해생존자(아영아 부산여성의전화 공동대표 대독)는 피해 당사자는 여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과 보호를 받기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표자라며 피해 당사자의 용기와 강인함에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56년 전 일어났던 부조리가 더 이상 이 땅에서 반복되지 않으리라 믿으며, 더 이상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싸우겠으며 재심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연대의 마음을 밝혔다.
피해자를 옆에서 조력한 윤○○ 부산 시민은 피해 당사자가 "소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을 풀어주십시오."라고 이 사건을 털어놓았을 때 피해 당사자를 끌어안고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법 앞에서 평등하지 못했던 부분이 충격으로 다가와서 피해 당사자를 조력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발언자는 다른 피해와 다르게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 당사자가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본 사건의 피해 당사자는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다는 현실에 분노하며, 현재의 사법 제도가 변하지 않고 후세까지 이어지는 것이 안타깝고 절박해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의 사법 시스템이 변화해야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며, 본인과 비슷한 경험과 억울함을 가진 여성들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며, 법과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가 변화해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퍼포먼스에서 참가자들은 56년 전 검찰, 경찰, 사법부가 쏟아냈던 2차 가해의 폭력적인 언어들을 2020년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는 언어로 치환한 반격의 몸짓을 보여줬다. '피해자, 네 잘못이다', '방어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냐', '범죄 충동을 일으킨 도의적 책임이 있다', '범행 장소까지 간 것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다' 등 56년 전 실제 판결문에 있었던 말들을 '범죄의 잘못은 가해자에게 있다', '범죄 피해의 순간에 당연한 대응은 자기방어다', '피해자의 친절은 동의로 해석될 수 없다' 등의 언어로 바꾸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박미라 김해여성의전화 대표, 김해영 전국성폭력상담소 부산·울산·경남 권역 대표, 고순생 부산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이 개시되고, 피해자에게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법원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오랜 잘못을 성찰하고 여성의 방어권 보장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합당한 응답을 할 것을 요구하며, 여성폭력 사건의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임을 선언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56년간 외면한 정의, 재심으로 바로잡아라!", "법원은 재심으로 피해자의 명예회복 책임져라!", "국가는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침해 배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부산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56년 전 부산지방법원은 피해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려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해자는 끝까지 정당방위임을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 이후 피해자는 가족의 냉대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내며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피해자는 미투 운동을 보며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사법기관은 가해자의 폭력에 대한 피해자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은 현재도 만연한 여성의 방어권에 대한 사법기관의 부족한 인식을 낱낱이 밝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데 큰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 기자회견에 참여한 385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이 사건을 성폭력 정당방위 사건으로 보고, 이제라도 정당방위를 외쳤던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고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하며, 여성의 방어권 인정과 56년 전 성폭력 사건의 정의로운 사건 해결을 위해 재심 개시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목록보기

기자회견-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56년 만의 미투, 재심으로 정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