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 언론보도


No. 24

<단호한 시선> 성명서 공유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상담소의 <단호한 시선> 성명서 공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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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

숙명여대에 신입생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이 입학한다고 보도된 이후 해당 신입생을 비롯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가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일 뿐이고 해당 입학은 ‘여대’라는 생물학적 여성들의 공간을 침입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여성인권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는 법원은 성별변경 신청을 기각하고 국회는 성별변경 불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라며 반인권적인 조치를 주장한다.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며 여성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은 세상은 여성과 남성 두 성별로만 이루어져 있고 성기의 외형에 따라 지정된 성별이 억압의 근원이며, 여성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여성들의 공간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여성은 가장 억압받는 약자이고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할 만한 어떠한 결함도 없어야 한다”는 기준은 누구의 시각인가? 우리가 만나는 여성들은 규범과 탈규범, 특권과 차별, 가해와 피해의 사이에서 선택하고 협상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것은 다양한 행위와 위치를 만들어낸다. ‘자격 없는 여성’은 트랜스여성만이 아니다. 자격에 대한 심판은 때로는 성폭력 피해자, 성매매 여성, 기혼 여성, 이성애자 여성에게도 향하며 그녀가 말할 자격, 존재할 자격을 박탈한다. 결국 자격 심판은 여성들과 약자들을 향할 것이며 성별 규범을 강화한다. 성별이분법의 강화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공고히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질적인 ‘자격 없는’ 존재들과 함께 싸우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왔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그때 싫다고 하지 않았는가? 왜 술집 혹은 모텔에 따라갔는가?’라고 질문하며 피해자의 행동이 모순되었다고 비난할 때 우리는 피해자와 함께 투쟁했다. 왜 모순이 발생하는지, 왜 그 속에서 자신이 살아왔는지 탐구하고 설명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 당신의 그 행동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며 이해하고 공감해 왔다. 존재에 대한 비난을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바꿀 때 한 걸음씩 나아갔다.

매끄럽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의 언어는 때로 산발적이고 이중적이기도 했다. 페미니즘은 우리의 현실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설명할 때 ‘여성’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서 호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부정된 적은 없다. 여성임이 피해를 경험하는 이유가 되고 ‘남성성’이 성폭력 가해의 원인이 되지만,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 당연한 피해자, 영원한 피해자로 대하지 않는다. 여성은 가해자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피해자의 말이 그 자체로 옳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피해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인식’하고 ‘저항’하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우리는 성폭력이 심각한 문제라고 알리는 동시에 ‘안전’을 추구한다면서 이루어지는 보호와 통제에도 맞선다. ‘여성들이 조심해야 한다, 남성들은 펜스룰을 지켜라’라고 말하는 대신 폭력에 맞서는 방법을 연습하며 대응 역량을 키운다. 공포는 강간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며 여성의 삶과 몸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부추겨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럼으로써 두려움을 우리가 맞닥드린 실체 있는 무언가로 구체화한다. 실재하는 공포와 안전해지고 싶은 간절한 욕구 앞에서 배제와 추방은 가장 힘있는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혐오와 차별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며 침범과 폭력에 대응하는 힘을 길러왔다.

다양성과 이질성이 만들어내는 모순을 “같은 여성”이라는 말로 단순화하는 대신 차이를 드러내며 질문할 때 공감-연결-확장-해방의 순간이 찾아온다. 힘 있는 여성인권운동은 차별과 폭력을 말하는 동시에 스스로에게서 힘을 박탈하지 않는다.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질문과 도전이 우리의 힘이다.

2020년 2월 6일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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