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No. 15

펌)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삶의 변화 종단연구 발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삶의 변화 종단연구 발표
이제야 비로소 “나는 ○○○”… 개별화된 삶의 주체로
한계 뚜렷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는 사회로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은 12일, 오후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컨벤션홀에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삶의 변화 종단연구 1~3차 연도 보고 및 제언대회’를 열었다. 사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은 12일 오후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컨벤션홀에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삶의 변화 종단연구 1~3차 연도 보고 및 제언대회’를 열었다. 사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과연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시설 밖에서 살아갈 수 없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에서는 최중증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위해서는 더 많은 발달장애인의 자립이 필요하다고 피력한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사람센터) 등은 12일 오후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컨벤션홀에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삶의 변화 종단연구 1~3차 연도 보고 및 제언대회’를 열었다. 제언대회는 사람센터 유튜브 채널에서도 생중계됐다.

이날 제언대회에서는 민아영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영화감독의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희망의 기록’ 영상과 박숙경 코융합심리치유연구소 대표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3년간의 변화’ 연구가 발표됐다.

민아영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영화감독의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희망의 기록’ 영상의 한 장면. 지역사회에 사는 중증중복 장애인(가운데)와 손을 잡고 걷고 있는 활동지원사와 코디네이터. 유튜브 영상 캡처
민아영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영화감독의 ‘그저 함께 살아간다는 것-희망의 기록’ 영상의 한 장면. 지역사회에 사는 중증중복 장애인(가운데)과 손을 잡고 걷고 있는 활동지원사와 코디네이터. 유튜브 영상 캡처
- 탈시설 후 3년, 그저 함께 산다는 것

대구시립희망원 시민마을이 폐쇄될 때 연고자가 없었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9명. 그들은 스스로 다른 시설로의 전원도 지역사회로의 삶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9명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지역사회로 나왔다. 그리고 3년째 지역사회에서 ‘그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민아영 감독의 영상에는 이들 9명의 시설 밖에서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슈퍼마켓에서 김치와 치즈를 사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 받기 싫은 치과진료를 받는 것. 좋아하는 스티커를 잔뜩 사서 붙이는 것. 이처럼 시설 밖에서의 삶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 좋은 일만 있지도 않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을 느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보통의 삶이다.

조금 다른 점은 이들의 곁에는 활동지원사, 코디네이터, 지원기관 슈퍼바이저 등 지원자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지원이 필수적이니 누군가는 이들의 삶이 불완전하다고, 혹은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는 그 말도 맞다.

이연희 사람센터 사무국장이 중증중복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이연희 사람센터 사무국장이 중증중복 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지금도 여전히 (지원이) 부족한 게 맞다. 그리고 정말 안전하냐 정말 체계 문제가 없느냐. 그렇지 않다. 안전의 위험도 있고, 불안한 요소들도 많다. 연결할 만한 서비스가 없는 지역사회 자원도 제한적이다. 이분들이 나올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 안 됐으니까 잠깐 쉬었다 갑시다’라는 건 없다. 우리 인생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 이분들이 나왔기 때문에 이런 인프라를 만들고, 24시간 지원도 더 늘려야 한다는 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중증장애인들이 더욱 자립생활을 시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연희 사람센터 사무국장)

- “나는 ○○○”… 개별화된 삶의 주체로

이연희 사무국장의 말처럼 이들이 한 삶의 시도들은 3년간 유의미한 결과를 보였다. 박숙경 대표는 “이들의 사회통합활동, 구간활동, 일상생활의 선택과 자율성, 삶의 질 만족도가 향상됐다”라며 “이러한 결과는 서구 국가들에서 실시된 중증 발달장애인의 삶의 변화 연구에서 보고된 것과 유사하다. 지원체계를 갖출 경우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역시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별 인터뷰를 통해서도 변화가 컸다. 초기보다 의사와 감정표현, 표정이 풍부해졌다. 의사소통, 감정, 행동 능력이 상승했다. 상호작용과 긍정적인 표현도 증가했다. 설문이나 인터뷰를 진행할 때 당사자들이 직접 응답하는 문항 수가 늘어나는 것도 긍정적인 점으로 꼽힌다.

박 대표는 “1차 측정(6개월 후)에서는 행동의 변화가 컸지만, 2차·3차 측정에서는 증가 폭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의 영향일 가능성이 점쳐지지만, 추후 추이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라며 “그러나 코로나로 장애인거주시설, 요양시설 등이 코호트격리가 되면서 외부인 방문과 바깥 외출 등이 전면 금지된 것과 비교한다면, 9명의 당사자들의 삶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 지표다”라고 설명했다.

박숙경 코융합심리치유연구소 대표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3년간의 변화’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박숙경 코융합심리치유연구소 대표가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이후 3년간의 변화’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박 대표는 당사자들이 비로소 자신이 누군지 알고, 서비스 지원자 외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탈시설이 단지 물리적으로 시설에서 나온 상태가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관계의 변화임을 상기한다면, 이제서야 진정한 의미의 탈시설이 이뤄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표는 “첫 조사에서는 탈시설 이후의 삶이 ‘환생’으로 표현되었다면, 점차 당사자가 ‘자신, 누구누구’ 등 개별화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음이 확인됐다”라며 “또 당사자들의 의사표현이나 자기관리 능력이 발달했다. 처음에는 당사자와 가까운 5인 중 유료서비스 제공자 비중이 70~80% 이상이었다면, 3차에서는 65.2%로 감소했다. 친구와 이웃의 비중이 25%로 증가해 사회적 관계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지원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고 있었다. 박 대표는 “한 공공후견인은 당사자에게 발생한 낙상사고를 장애 때문에 발생한 ‘위험’이라는 보호관점이 아닌, 모든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라며 지역사회 ‘장애인 권리옹호’ 관점에서의 효용을 제시하기도 했다.

- 한계도 뚜렷…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자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있다. 당사자들의 사생활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병원 입원 치료 이외의 영양관리와 재활·운동 등의 자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 지원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

박 대표는 “노인기관이나 장애인기관에서 장애여부나 장애정도를 이유로 거절당하는 일도 많다. 3년 전과 비교해 의료, 지역사회 자원의 개발과 연계, 활동지원서비스, 주거환경 등은 큰 변화가 없다”라며 “여전히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코디네이터들이 외부 지원체계, 서비스 매뉴얼 부재, 제도적 지원의 열악함을 그대로 겪고 있다. 또 높은 책임감으로 당사자를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이직률도 높은 것은 한계다”라고 짚었다.

이동석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새활센터
이동석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러한 한계는 9명의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탈시설 사례를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정배 중앙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 센터장은 “희망원에서 탈시설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9명의 탈시설 모델을 비롯해 성공한 사례가 보편적으로 안착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라며 “희망원 사례에서는 직원들이 일반적인 근로 형태에서 열정, 봉사, 희생이 필요했다. 이는 노동과 연관이 될 때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를 제거하고 제도화할 수 있는지, 지속가능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우리사회의 장애개념 변화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이동석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80, 90년대만 해도 신체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제 자립할 수 없다는 사람은 없다. 장애인의 개인의 역량이 좋아진 게 아니라 사회가 변화해서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체장애를 이동장애의 개념으로 보면 이들에게 엘리베이터, 경사로, 저상버스 등을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발달장애를 단순히 인지손상이 아닌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라고 본다면 이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게 된다”라며 “‘발달장애인은 탈시설 안 되잖아’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지금 겪는 어려움에 대해 우리사회가 어떠한 지원을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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